
서울에 살면서도 숭례문 파수의식이 매일 진행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매일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쳤던 그 문에 이런 의식이 있었다니,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보 제1호를 이렇게 오랫동안 그냥 지나쳤다는 게 새삼 머쓱하더라고요.
서울 한복판에서 매일 열리는 의식, 그냥 지나쳤습니다
저는 서울 사람인데도 중구 방향을 거의 가지 않습니다. 가봤자 남대문시장 투어 정도였고, 숭례문은 차로 이동하면서 창밖으로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광화문 쪽은 종종 가는데, 숭례문은 그보다 더 남쪽이라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알게 된 게 바로 파수의식(把守儀式)입니다. 여기서 파수의식이란 조선시대 도성 성문을 지키던 수문장 군사들의 경비 절차를 재현한 전통 의식을 말합니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 조선시대 경비 체계를 바탕으로 고증(考證)한 행사입니다. 고증이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당시의 복식, 동작, 절차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작업을 뜻합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때 완공된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정문으로, 1396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 도성의 얼굴이자 출입을 통제하던 핵심 관문이었습니다. 한양도성이란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곽 전체를 가리키며, 숭례문은 그 남쪽 관문으로서 가장 격식이 높은 문이었습니다. 2008년 화재로 누각 부분이 전소되었을 때 저도 뉴스를 보면서 정말 참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건물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끊기는 일이니까요.
파수의식, 폐문의식, 순라의식 — 세 가지가 한 번에
파수의식 행사는 크게 세 가지 의식으로 구성됩니다.
파수의식: 수문장이 교대하며 성문을 경비하는 절차를 재현
폐문의식(閉門儀式): 해가 지고 성문을 닫는 절차를 재현한 의식
순라의식(巡邏儀式): 야간에 도성 안팎을 순찰하던 절차를 재현한 의식
여기서 폐문의식이란 조선시대 도성의 문을 공식적으로 닫는 절차로, 인정(人定)이라는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인정이란 밤 10시경 종을 쳐서 성문을 닫고 통행을 금지하는 신호를 말합니다. 순라의식은 야간 도성 내 질서 유지를 위해 군사들이 정해진 경로를 순찰하던 제도를 의식화한 것입니다.
제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이 세 의식이 하루 일정 안에 순서대로 다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만 맞추면 한 번 방문으로 전체 흐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도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조선시대 도성 경비 체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숭례문 파수의식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서울특별시가 협력하여 운영하는 공식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입니다.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이란 국가지정문화재를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체험·재현을 통해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말합니다(출처: 문화재청).
강산이 바뀌는 속도, 문화유산은 남아야 합니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면서 숭례문이 국보 제1호라는 걸 외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그게 얼마나 무게 있는 사실인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강산이 10년이면 변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5년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도시도 빠르게 바뀌고, 주변 환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 속도 속에서 60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숭례문의 존재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못했던 파수의식이라는 전통 의례가 지금도 매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그 시대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 군사 제도 중 하나인 오위(五衛) 체계를 바탕으로 재현됩니다. 오위란 조선 전기 중앙군을 다섯 개 부대로 편성한 군사 조직으로, 의흥위·용양위·호분위·충좌위·충무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의식인 만큼,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도성 수비와 관련된 기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상세히 정리되어 있어 사전 공부를 하고 가면 훨씬 더 풍부하게 의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파수의식을 보러 갈 계획이라면 사전에 운영 시간을 꼭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일정이 조정될 수 있고, 평일과 주말 운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보지 않으면 또 몇 년이 지나가는 경험, 저는 이미 충분히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직접 발걸음을 옮겨볼 생각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심지어 매일 지나치던 그 문 앞에서 이런 의식이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좀 낯섭니다. 그 낯섦이 오히려 동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숭례문 파수의식을 보지 못한 서울 시민이라면, 관광코스가 아니라 '내 도시의 역사를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한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욱 좋습니다.
참고: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fes_detail.do?cotid=21890175-b6a5-400c-ad96-4687c32c03a1
https://www.ehistory.go.kr/view/photo?mediasrcgbn=PT&mediaid=37296
https://www.royalguard.kr/content/sungnyemun_gate